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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관련생활정보

테일러, 과학적 관리법의 원리방법

테일러(F. W. Taylor, 18561915)는 과학적인 관리법의 창시자이다. 테일러(F. W. Taylor)의 시대는 미국의 공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유럽의 공업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로 급진전하던 때였다. 테일러(F. W. Taylor)1874, 하버드 대학에 입학을 했으나 시력의 저하로 인해 학업 도중에 진로를 변경하여 지역의 작은 펌프 제조소에 취직하였다. 견습기간이 끝난 뒤 다른 미트벨 제철소에 고용되었다. 거기에서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는 직장에서 실지 체험을 했으나, 실제로 느낀 것은 노동자들의 태만함이었다.그는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오르자 노동자의 조직적인 태만을 어떻게 타파할수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일을 신속하게 해버리면 일이 없어져서 직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노동자와 가능한 한 능률 좋게 일을 시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궁리하는 경영자 모두에 적합한 짜임새를 모색하였다. 테일러(F. W. Taylor)는 연구성과를 먼저 노임의 성과급제부터 공장관리법으로 서술하여 미국기계기사협회에 제출하기 위해서 과학적 관리법의 원리로 정리하였다.F. W. Taylor,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 New York : Harper, 1911.테일러(F. W. Taylor)는 성과급을 정할 때에 작업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노동자의 작업성적에 대한 표준을 정하는 것이 관리자의 역할이라고 설명하였다. 작업의 기본적인 구성부분에 대해서 가장 좋은 방법(One Best Way)이 정해지면, 표준시간이 설정되어 그것이 성과급의 기초로서 쓰이게 된다는 것이다. 일의 내용과 양을 노사 쌍방으로부터 따로 분리하여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방법을 생각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하였다. 이러한 것들을 과업관리라고 부르며, 실제는 시간관리를 행하는 것으로서 노동자에게는 높은 임금과 경영자에게는 낮은 노임이 달성되는 것이다. 이 시간관리를 재고관리, 생산관리, 원가계산, 품질관리 등으로 확대하여 갔다.그러나 이러한 분석의 많은 부분이 한삽(shovel) 작업과 벽돌 쌓기 등 비교적 단순한 수준의 관리문제를 다루고 있어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관리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저항을 받았다. 그 이유는 비숙련공이 숙련공에게 어떻게 일의 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가가 이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관리자의 역할이 증대하여 대규모의 업무조직 개혁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이를 추진하려고 하는 테일러(F. W. Taylor)의 주장은 작업합리화에 대해 노사의 반발을 불러들이게 되었다.테일러(F. W. Taylor)의 주장이 알려짐에 따라 저항은 점점 커졌다. 이는 노동자의 사회문제가 되어 의회는 테일러(F. W. Taylor)의 관리방식에 대하여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소동이 났다. 테일러(F. W. Taylor)는 그 진술에서 과학적 관리의 본질은 노사에 정신혁명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으로서 4가지의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노동자의 오래된 체험적 지식에 대신하는 노동자의 결합노동자의 과학적 구성과 참신한 육성과학과 과학적으로 관리되고 훈련된 공원과의 결합현장의 일에 대한 공원측과 경영자측의 사이에서의 거의 평등한 분담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테일러(F. W. Taylor)는 노사 쌍방의 저항을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관리는 합리적인 규칙과 절차에 의한다는 의견은 경영학을 과학으로서 받아들인 시초였다. 테일러(F. W. Taylor)의 사후, 이러한 사고방법은 Industrial Engineering(IE)인 시초였다. 버나드(C. I. Barnard)1886년에 태어나 1961년에 사망하였다. 버나드(C. I. Barnard)1909년에 하버드 대학에서 3년 간 공부한 뒤 중퇴하고, 미국전신전화회사(AT & T)에 입사하였다. 그리고 뉴저지 전화회사의 사장을 1927년부터 약 20년 간 지냈다. 게다가 그는 영리회사의 사장경험뿐만 아니라 록펠러 재단의 이사장, 뉴저지 바하협회 회장, 원자력위원회 위원 등의 비영리단체의 경력도 가졌다. 그의 경력과 조직에 관한 연구는 실용학문으로서 경영자의 역할에 나타나 있다.